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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는 자식들을 위한 '교육투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3-10-09
조회수
1088

 

“자녀교육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한 한인이 많지요. 하지만 자원봉사활동이 사회의 큰 뼈대를 이루는 미국사회에서 한인들은 학교활동에 소극적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지요. 자원봉사 없이 커뮤니티에서 인정받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자녀교육도 원하는 대로 될 수가 없지요”

30살에 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주의 페더럴웨이 시장에까지 오른 박영민씨(朴英敏·마이클 박·57).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미주지역 시애틀지구 협회장 자격으로 모국을 찾은 그는 최근의 이민붐에 대해 “타국에서 대대손손 뿌리를 내릴 단단한 각오 없이는 본인과 2세는 물론 조국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시애틀에서 35㎞ 떨어진 인구 8만5천명(한인 8,000명)의 페더럴웨이시 시의원을 맡고 있는 그는 영어가 유창한 것도 아니고 미국의 유명대학 졸업장도 없고 백만장자도 아니다. 그런 그가 미국 주류사회에서 ‘존경받는 미국시민’으로 자리잡게 된 유일한 재산이 ‘자원봉사’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46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서울서 대학을 마치고 섬유회사를 다니던 박씨는 7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꽃배달 운전수로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이내 지금의 페더럴웨이로 옮겨 세탁소를 시작한 그가 지역사회 자원봉사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그의 나이 마흔, 이민 10년째였던 86년. 늦게 본 큰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박씨는 아무리 바빠도 학교 봉사는 빠뜨리지 않았다. 그가 밖으로 돌면 세탁소의 빈자리는 아내(박진식)의 몫으로 돌아갔다. 자원봉사를 자식들을 위한 ‘교육 투자’로 여겼다.

그는 “미주 한인들이 영어도 서툴고, 먹고 살기 바쁘다며 자원봉사에 나서지 않는 것은 핑계일 뿐”이라면서 “세탁소를 해서 한달에 5,000달러를 번다면, 그 중 500달러어치는 월급을 주더라도 시간을 내서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면 된다”고 강조한다.

자식사랑에서 비롯된 자원봉사는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박씨’란 입소문을 탔다. 그를 눈여겨본 초등학교 교장 추천으로 교육감 자문위원을 비롯해 ‘등 떼밀려’ 시정에 한발씩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한인회 활동으로 알게 된 시장의 권유로 95년 12월 시의원 선거에 뛰어들었다. 당시 시 상공회의소장이었던 상대후보는 ‘시를 동양인에게 맡길 수 없다’는 인종차별적 선거전을 펼쳤다. 그러자 박씨의 성실함을 기억하는 시민들이 신문 기고란에 ‘시의원 선거가 일꾼을 뽑는 것이지 인종의 문제냐’며 잇달아 반론을 폈다.

7%차로 승리. 맨주먹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지 19년만에 ‘세탁소 아저씨’는 시의원에 뽑혔
다. 부시장을 거쳐 2000년부터 임기 2년의 시장도 역임했다. 미국 이민 1세대가 시장에 오르기는 김창준 전 미하원의원에 이어 두번째다. 이젠 페더럴웨이에서 ‘거물’ 대접을 받는 박의원은 올해말 예정된 시의원 선거에서 단독 출마로 당선을 찜해놓은 상태다.

성공한 이민 1세대인 그는 이민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주문한다.

“허황된 꿈을 버려야 한다. 돈이 있더라도 차근차근 밑바닥부터 배운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에서의 지난날은 잊어야 한다. 미련과 헛된 꿈을 좇으면 본인은 물론 2세까지 망친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한국어 교육은 반드시 시켜야 한다”

그는 “이민은 주인이 되기 위해 타국으로 가는 것”이라며 미주 한인사회의 주인 의식 부족을 꼬집는다. 세금도 내고 법을 잘 지키면서도 봉사활동이나 참정권을 행사하지 않아 제대로 대접을 못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음 시의원 임기를 마치는 2007년이면 그는 61살, 시정활동 12년에 이른다. 주변에서는 하원의원이나 주정부로 나서라는 ‘압력’을 넣고 있지만 그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비상근 시의원 월급은 1,075달러(1백20만원). 공식 회의는 월 두차례지만 분과회의와 준비 등으로 회의가 이어진다. 회의가 없는 날엔 그는 예의 ‘세탁소 아저씨’로 돌아온다. 그는 돈버는 재주 없는 남편이 시정활동으로 까먹는 세탁소일을 묵묵히 맡아주고 있는 아내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한다.

“미국살이 27년간 번 재산이라면 그동안 해온 사회봉사가 전부”라는 그는 출국에 앞서 두 딸이 주문한 가요 CD를 사러 발걸음을 옮겼다. 

9월26일 경향신문 〈유병선기자〉